팜플로나에서(Pamplona)에서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까지는 대략 24 km입니다. 24킬로는 정말 평소에는 아니 평생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거리인데, 이제 4일 차가 되면 그냥 받아들이게 되는 거리입니다. 물론 쉽다고 생각하다기보다는 많은 순례자들이 이 정도의 거리를 걷다 보니 왠지 저도 따라 걷게 됩니다.
프랑스 순례길 4일 차
순례자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며 출발을 했습니다. 팜플로나는 꽤 큰 도시이기 때문에 빠져나오는데도 한 시간 이상 걸렸습니다. 아직은 그리 분주하지 않은 도시의 아침을 맞으며 배낭을 메고 아침 햇살을 맞으며 걷다 보면 상쾌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다가 만난 빵집에서 갓 구운 크로와상과 커피를 먹다 보면 기운이 납니다. 지금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제게는 잊을 수 없는 작은 행복이었나 봅니다.
하지만 초반이라 몸 상태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물집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발목을 다친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마 첫 일주일에서 10일 정도는 몸이 적응하는 기간이라 정말 힘이 듭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몸이 어느 정도 적응을 하지만 초반에는 배낭 메는 법, 등산 스틱(지팡이) 짚는 법등 아직 서투른 초보 순례객들은 고생을 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오늘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작은 두려움과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날이 될까'하는 기대가 같이 공존했습니다.
지도
아래 이미지의 고도표를 보면 만만한 높이처럼 보이지 않죠. ㅎㅎ 고도는 800미터가 좀 안되는데 이미지는 좀 뾰족하게 나와있네요. 분명 가로 세로 비율이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죠. 어느 누구나 할 것 없이 하루 24 킬로 그것도 평지가 아닌 언덕을 걷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걷다 보면 또 해낼 수 있습니다. 24킬로를 걷는다고 하면 정말 힘든데 한시간에 4킬로를 목표로 하면 좀 걸을 만해요. 보통 한 시간에 4킬로를 걷습니다. 물론 더 빨리 걸을 수도 있지만 보통 중간에 화장실도 가거나 잠시 쉬는 시간을 빼면 제 기준으로 한 시간 4킬로를 잡으면 대충 비슷합니다. 오전에는 좀 더 많이 걷고 오후에는 힘이 빠져 더 적게 됩니다.
DAY3 수비리에서 팜플로나까지 - feat 유심 사기
용서의 언덕 (Alto del Perdon)
넓은 들판을 지나고 작은 마을을 지나면 드디어 용서(Perdon)의 언덕에 도착을 합니다. 사진에도 보이지만 이곳은 하얀 풍력 발전기가 능선을 따라 펼쳐져 있고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과 또 다른 느낌이 드는 곳입니다.
정상에는 철판으로 만들어진 순례자의 모형물들이 바람을 가로지르며 이 언덕을 넘어가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 맨 오른쪽 말을 타고 있는 순례자 모형에 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donde se cruza el camino del viento con el de las estrellas”라고 적혀 있는 데, 뜻은 "바람의 길이 별의 길을 가로지르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용서의 언덕이라고 했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누군가 용서를 빈 곳인지 아니면 용서를 하는 곳인지....
한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온다
이제 내리막이니 좀 편하겠다는 생각도 잠시 아래 사진처럼 자갈 길이 나옵니다. 경사가 그리 심하지는 않지만 자갈들이 걸을 때마다 흔들리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발목을 접질릴 수도 있습니다. 수비리에서 내려올 때보다는 힘들지 않았지만 잠시 긴장을 했던 곳입니다. 다행히 그리 긴 길이 아니라 걸을 만했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늘이 없습니다. 이럴 때 정말 필요한 건 물과 모자는 필수입니다. 그리고 썬글라스도 꼭 필요하죠. 스페인의 햇살은 정말 강렬합니다.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선크림도 자주 발라줘야하는데 전 아침에 한번 바르면 안바르게 되더군요. 또 까맣게 타게 됩니다.
자갈길을 다 내려오면 밀밭길을 걷습니다. 바람이 만들어 낸 밀밭소리를 들으며 걷고 또 걷습니다.
작은 마을을 지나 한참을 걷다가 Puente la Reina에 도착합니다. 작은 편이지만 아주 작지도 않은 곳이라 작은 호텔도 있고 슈퍼도 여러 곳 있습니다. 늘 그렇지만 씻고 저녁 먹고 하다 보면 마을을 둘러볼 시간도 없고 힘도 없죠. 슈퍼에 저녁거리를 사러 갈 때 지나게 되는 길이 그곳의 기억이 됩니다.
글을 쓰다 보면 그날의 일들이 막 떠올라 글이 자꾸 길어지는 거 같아서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제가 쓰는 이글보다 모르고 가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사진도 많이 안 올리려고 노력 중입니다.
부엔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