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프랑스 순례길 10일 차: 그라뇽(Granon)에서 벨로라도(Belorado)까지는 대략 16km입니다. 이제는 조금 더 익숙해진 길을 걷습니다. 넓디넓은 평야를 지나며 밀밭이 이라고 추정되는 대지를 옆으로 지나 걷고 걷습니다.
프랑스 순례길 10일 차
그라뇽을 출발해서 벨로라도까지 특별한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니 아마 순례길이 익숙해지고 있었나 봅니다. 총 800km의 1/3일 정도 걷지 않았을까요? 아마 순례길의 초반은 거의 다 걸었을 겁니다.
순례길에 오르면 고민은 해결될까?
그 길을 걸으면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걸을까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오신다거나 큰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건 굳이 묻지 않아도 알게 되고 이야기하다 보면 느낌으로도 알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어떤 이는 사랑하는 이가 아프거나 헤어진 경우 등등 아주 당양한 이유로 그 길을 걷습니다.
물론 저도 무엇인가 답답한 심정으로 출발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유로 걷죠.
필자는 원하는 답은 얻지는 못했어요. 전 그걸 첫날 피레네를 지날 때 생각을 했습니다. '아 이곳에는 해답이 없겠구나'하고
인생에 해답이 없듯이 그곳에서 답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많은 경험과 좋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여행을 떠나는 그 순간에 더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서일지도 모릅니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것이 색다르게 보이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인생을 살아가는 힘을 축적할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조승연 작가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을 100세까지 산다고 해서 100프로 충전되어있는 건전지를 한 해 한 해 나누어 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 매달 새로운 경험으로 우리의 맷집을 키워 그 100프로짜리 건전지를 다시 충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정말 방전된 것 같이 힘든 사람들에게 다시 살아갈 충전을 해주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10프로를 어떤 사람은 100프로를 충전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1년 치 충전을 하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거의 2년이 지난 지금 또 가서 충전하고 싶은 곳입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배터리가 방전되지 않게 스스로 충전 중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바쁜 생활 속에 부대끼며 살다 보니, 나를 볼 시간 내 주위를 볼 시간 제대로 없었다면 좀 더 깊고 넓게 인생을 볼 '시간'이라는 여유가 생기죠. 아마 처음에는 몸은 너무 바쁜데 생각은 하다 하다 할 게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간이 생깁니다.
사실 걷다 보면 생각을 할 여력이 없습니다. 순례길에 오르면 우리는 어떤 문제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게 아니라 그 문제에서 떨어질 수 있는 지리적 공간적인 여유를 갖게 되어 한숨 쉴 수 있게 되는 거죠. 결국 문제를 해결할 이유도 필요도 없이 떨어져 나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유로워지는 경험을 개인적으로는 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벨로라도 가기 전 지나가는 마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신발을 벽에 붙여놓은 것이 인상적이죠. 지금 자세히 보니 이곳도 알베르게였나 봅니다. 이제야 자세히 보게 되네요.
아래 사진은 벨로라도에 있는 알베르게 앞에 있는 순례자를 묘사한 동상입니다. 노란색 셔츠가 인상적이죠. 제가 보기엔 스페인 사람 같은데 나름 귀엽게 보입니다. 많은 순례자가 이곳에 머물죠. 성수기에는 줄을 서서 들어가기도 합니다.
벨로라도는 작긴 하지만 아주 작은 마을은 아닙니다. 여전히 씨에스타의 시간에는 정말 조용해지는 도시입니다. 광장에 있는 카페에서 파는 정말 맛있는 피자가 생각이 나는 곳입니다. 그라피티라기보다는 벽화에 가까운 그림들도 볼 수 있고 아기자기한 동네입니다.
이제 쉬지 않고 달려온 열흘 간의 시간이 지나 초반에 힘들었던 서툰 순례자보다는 이 길에 적응이 돼가던 때입니다. 하지만 쉬지 않고 매일 강행군에 의한 피로가 누적되어 가던 때이기도 합니다.
어떤 날을 좀 더, 어떤 날은 좀 덜 걷기를 하며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계획을 매일 수정하던 밤이 생각이 납니다. 아침에는 정말 멀리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아도 점심 먹고 배가 부르고 다리가 퉁퉁 부어 오면 그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와의 싸움을 하는 것처럼 계획을 변경했었습니다.
부엔까미노!